망우리 공원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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망우리 지명 유래

망우리 지명 유래

여지도 망우리면

< 여지도 망우리면 >

정의

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(옛 망우리)의 지명이 생겨난 유래를 전하는 지명전설

줄거리

태조 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종묘사직을 마련한 후, 선왕들의 능지를 정하기 위해 대신들과 함께 현재의 동구릉을 답사하였다. 그런데 무학대사는 그 자리가 선왕의 능지보다는 태조의 신후지지(身後支地)로 더 적합하다고 권고하였다. 태조는 그 권고를 받아들여 자신의 능지로 결정한다. 기쁜 마음으로 환궁하던 중 지금의 망우고개 위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자신의 능지로 결정한 곳을 바라보니 과연 명당이었다. 이에 태조가 “이제는 근심을 잊게 됐다.”라고 경탄한 데서 ‘망우(忘憂)’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.

변이

이 전설의 변이는 다음과 같다. 조선 태조가 개국한 뒤 사후에 묻힐 곳을 찾기 위해 개국공신 남재(南在)를 비롯한 다른 신하들과 명당을 찾던 중, 현재의 건원릉(健元陵) 부근에서 세 혈을 얻었다. 이곳은 이미 남재가 묏자리로 잡아놓은 지라 태조가 남재에게 다른 곳과 바꿀 것을 제의했다. 남재는 “왕릉으로 정한 곳에 어찌 제가 묻힐 수 있겠습니까? 이것은 불경일 뿐 아니라 후손에게도 중죄가 되는 것이니 불가합니다.”라고 대답하였다. 태조는 “내가 잊지 아니한다는 내용의 글을 써 줄 터이니 이것으로 증빙을 삼으라.” 하고 친히 불망기(不忘記)를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. 그 밖의 변이형은 특별히 발견되지 않는다. 단지 망우라는 이름이 들어간 지역은 전국에 있다.

특징

<망우리>는 역사전설에도 해당된다. 조선 태조와 무학대사가 수도 한양에 터를 잡는 것에 관한 설화가 다양한데(왕십리, 인왕산 등) 이 전설도 여기에 해당된다. 이는 무학대사의 불교와 민중사상과 이 태조의 건국이념인 유교의 조화 과정을 연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.

참고문헌

우리고장 역사탐방(구리문화원, 2006), 한국구비문학대계(한국정신문화연구원, 1980∼1988) 1-4, 266,우리 민속 문학의 이해(소재영, 전설편, 1979), 한국 땅이름 큰사전(한글학회, 1991), 한국 설화전설 대전집(박영준, 태양사, 1975).

출처